학벌보다 강한 열정, 우주의 문턱을 낮추다:로켓랩Rocket Lab)과 피터 벡 이야기

대학 졸업장 대신 로켓를 선택한 괴짜: 피터 벡의 기묘한 도전


로켓랩일렉트론(Electron)과 창업자 피터 벡의 뉴질랜드 키위 합성 이미지
일렉트론(왼), 나는 키위새과 피터백의  이미지를 합성(오른쪽)


옛날 뉴질랜드의 최남단, 남극의 찬 바람이 불어오는 인버카길이라는 작은 도시에는, 학교 수업종 소리보다 금속이 부딪히는 챙강 소리를 더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피터 벡. 그는 남들이 대학 강의실에서 두꺼운 전공 서적을 넘길 때,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차고 안에서 불꽃을 튀기던 이단아였다.

피터 벡은 대학 졸업장이라는 '지도' 없이 우주로 가는 길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고작 고졸 수습공이 어떻게 로켓을 만든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기이한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 날은 멀쩡한 자전거에 자작 로켓 엔진을 달아 시속 140km로 도로를 질주하며 바람을 갈랐고, 또 어느 날은 제트 배낭을 등에 메고 하늘을 날아오르려 했다. 그에게 세상은 거대한 실험실이었고, 이러한 기행은 단순한 미친 짓이 아니라 우주를 향한 처절한 계산의 일부였다.

이 기이한 모험가의 가슴 속에는 '로켓랩'이라는 야수가 살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과감했다. 남들이 "비싼 특수 금속이 아니면 엔진 열기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 경고할 때, 피터 벡은 차갑게 웃으며 3D 프린터 앞에 섰다. 그는 복잡한 엔진 부품을 정교하게 깎는 대신, 마치 마법처럼 24시간 만에 엔진을 '찍어내' 버렸다. 탄소 섬유로 몸체를 만들고, 세계 최초로 전기 배터리로 가동되는 로켓 엔진을 완성했을 때 세상은 경악했다. "가장 가볍게, 가장 싸게, 하지만 가장 빠르게!" 이것이 피터 벡이 세상의 규칙을 부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무모한 실행력 뒤에는 언제나 지독한 전략가로서의 피터 벡이 서 있었다. 그는 독학으로 도서관의 모든 로켓 공학 서적을 통달한 천재였다.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던 그 짧은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은 엔진의 진동을 숫자로 변환해 기록하고 있었다. 대학에 가지 않았기에 오히려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웠던 그는,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하는 모든 불가능을 정교한 데이터로 가능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의 이런 고집과 유연함이 충돌한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한때 그는 "로켓을 회수해서 다시 쓰는 건 비효율적이다. 만약 우리가 로켓을 회수하겠다고 말을 바꾼다면 내 모자를 먹겠다"고 호기롭게 공언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기술적 필요성을 깨닫자,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꺾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모자를 믹서기에 갈아 마시는 영상을 전 세계에 공개하며 자신의 말을 번복했음을 유머러스하게 인정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더 큰 혁신을 선택한, 괴짜다운 정면돌파였다.

결국 그는 보란 듯이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발사 직전 엔진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는 현장을 누비며 부품 하나하나를 손으로 직접 점검하는 동시에 수천 줄의 코드를 훑으며 오류를 찾아냈다. 이 로켓은 거대 자본이 만든 기계가 아니라, 밤새 잠을 설쳐가며 깎아낸 자신의 영혼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로켓은 어둠을 뚫고 별을 향해 포효하며 솟구쳤다.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깨달았다. 피터 벡이라는 청년이 증명한 것은 단지 로켓의 성능이 아니었다. 대학 간판이 없어도, 세상이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뜨거운 용기와 냉철한 전략이 조화를 이룬다면 우주조차 손에 닿을 수 있다는 진리였다.

오늘도 피터 벡은 정장 대신 작업복을 입고 차고 문을 연다. 그는 여전히 더 높은 곳을 꿈꾸며 불꽃을 튀기고, 그 불꽃 속에서 다음 성공의 궤도를 그려낸다. 이 괴짜 연금술사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불가능이라 믿었던 우주의 문턱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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